보편성의 독점 si

젠더 이슈에 대한 토론에 참여해 보면 느끼는 것인데, 페미니즘 진영이건 안티페미니즘 진영이건 보편성(소위 말하는 상식)을 독점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더군요.

그 가운데 하나가 성평등이라는 개념입니다.

나무위키의 성평등 날조사건은 성평등이라는 개념을 사상화해서 독점하려는 시도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평등이라는 개념을 독점하고 무엇이 성평등인지 아닌지를 나누는 대법관 역할을 하면서 '페미니즘은 성평등이 아니다.' 라는 프레임을 만들려던 시도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사실 안티페미니즘 진영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실 성평등주의나 남녀평등주의같은 단어 자체는 나무위키 날조사건 이전에도 이미 있었던 단어입니다. 다만 이때는 성평등주의라는 독립된 사상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졌던 했던 단어죠.

우리는 페미니스트들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 대신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을 '성차별주의자'라고 불러야 한다. 왜냐면, (성차별주의자가 아닌) 나머지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페미니즘이 성차별주의와 반대되는 성평등주의와 동의어라는 주장이죠.


뭐, 이런 문제는 단지 젠더 이슈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것을 상식과 비상식, 선과 악의 구도로 나누고 자신이 상식이자 선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여성학의 학술적 권위는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si

여성주의와 관련된 토론에 종종 참여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과연 여성학이라는 학문의 권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겁니다.



여성학은 여성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입니다. 여러가지 학술적 주제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여성주의의 정치적 주장에 대해 학술적인 근거나 개념을 제시하는 학문입니다.



이러한 여성학과 여성주의의 관계를 보고 있자니 여성학이라는 것이 극도로 정치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성학은 여성주의의 시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성주의의 정치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학술적 근거나 개념이라는 것이 과연 정치적 주장과 구분될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냥 학문인 척 하고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치적인 주장 같은 것들을 과연 레퍼런스로 받아들여야 하느냐 하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철혈의 오펀스]올가 이츠카의 두 조력자, 맥길리스 파리드와 나제 터빈 manhua

이야기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금발 로리콘의 진의가 드러났습니다.

금발 로리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힘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건담 바알을 손에 넣으면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걀라로호른의 정점에 서고 모든 힘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러스탈 앨리온은 이에 대해 어린아이의 발상이라고 말합니다만...

전에 한번 언급했던 것인데, 아이들이 소년병이 되려는 동기 가운데 하나가 힘에 대한 동경입니다.

분쟁지역의 어린아이들은 힘 있는 사람에게 착취당하면서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무력감에 대한 보상심리로서 힘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철혈의 오펀스의 양대 주인공중 하나인 올가 이츠카에 대한 동기 또한 힘에 대한 동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올가 이츠카가 어떤 동기로 움직이는지 알기 어렵다고 하지만, 올가 이츠카가 소년병이 되기 전에 느꼈던 무력감에 대한 반동으로서 힘(폭력, 권력 등)을 동경하게 되었다고 하면 올가 이츠카의 행동은 대부분 설명됩니다.

그리고 금발 로리콘 또한 올가 이츠카와 똑같은 동기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거죠. 연령상 금발 로리콘은 어른이긴 하지만, 그 내면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인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금발 로리콘 또한 소년병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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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 터빈은 이와 반대로 무엇보다 가족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 거는 인물입니다. 물론 나제 터빈과 터빈즈 같은 경우는 폭력조직에 대한 미화 문제와 여성에 대한 왜곡된 관점 등에 대한 비판을 듣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나제 터빈은 약자(주로 여성)을 지키기 위해 그녀들을 가족으로 삼고 세력을 키웠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여깁니다.

나제 터빈에게 힘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만약 자신이 가진 힘으로 가족을 지킬 수 없을 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힘이나 세력 그리고 자신의 목숨 등을 내던질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한 동기를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긴 했습니다만.... 뭐 그냥 여자를 좋아하는게 그의 천성인 것이겠죠.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올가 이츠카와 공통되는 점입니다. 올가 이츠카라는 인물은 철화단이라는 가족을 상당히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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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 모두 올가 이츠카의 조력자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올가 이츠카와 공통되는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발 로리콘은 힘을 동경한다는 점이 올가 이츠카와 똑같고, 반대로 나제 터빈은 가족을 소중히한다는 점이 똑같습니다. 금발 로리콘과 나제 터빈은 올가 이츠카가 가진 양면성중 한쪽 면을 상징하는 인물인 거죠.

철혈의 오펀스라는 작품을 올가 이츠카의 성장담으로 본다면, 올가 이츠카라는 인물은 나제 터빈과 금발 로리콘의 사이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올가 이츠카가 보이는 모순점들 또한 여기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올가 이츠카는 힘과 가족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지만 때로 두 가치는 양립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올가 이츠카의 선택과 행동이 기존의 행보와 모순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 거죠. 그리고 조만간 올가 이츠카는 나제 터빈이 걸었던 길과 금발 로리콘이 걸었던 길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제 터빈과 터빈즈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나제 터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느냐는 비판이 있었는데, 나제 터빈이 올가 이츠카의 한쪽 면을 상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설명이 됩니다. 나제 터빈의 최후는 나제 터빈이 상징하는 길의 끝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나올 금발 로리콘의 최후는 금발 로리콘이 상징하는 길의 끝을 보여주게 되는 것일 겁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결말 직전에 두 조력자의 최후가 연달아 배치되는 것은 이야기의 구조적으로는 이상할 것 없죠.



뭐, 물론 어디까지나 위의 이야기는 제가 느낀 점을 바탕으로 추론한 거라 얼마든지 틀릴 가능성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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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hould not be afraid of their goverments, goverments should be afraid of their people. 국민이 그들의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돼, 정부가 그들의 국민을 두려워 해야지. 영화 '브이 포 벤테타(V for Vendetta)' 중 브이의 대사 외부 블로그 링크 약간의 배려는 해주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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